연애공화국의 언니들에게.

살짝 독하게 마음 먹고 약 4개월 만에 신생아 셋 정도를 몸에서 덜어냈더니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요즘 연애하냐?' 아니면 '선 볼래?'다. 아무리 이 나라가 연애와 결혼을 하지 않으면 사람 대접 못받는 연애공화국이라지만 이건 좀. (이보세요들, 지금 이 정도 몸으로 20대 내내 살았거든요. 내가 내 몸 무거워서 시작한 일인데 그렇게 오해하시면 대략난감.) 나이와 성별로, 외모로, 학벌로 사람을 분류하더니 이젠 '솔로'레타리아와 '커플'주아까지 나누는가. 혹시 이 나라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연애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커플로부터 나온다.'가 아님? 아니면 말고.

아무튼, '솔로'레타리아인 내 눈으로 본 이 연애공화국의 언니들은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왜냐고?
연애 시작부터 끝까지 다른 사람 시선만 너무 의식하는 것 같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

정말로 하고 싶어서,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한 언니들에게는 이 글은 시간 낭비.
언니들은 그냥 살던대로 살면서, 몸과 마음을 다하여 행복한 연애하길.

남들이 하나씩 갖고 있으니까 나라고 질 수 있나 하는 마음으로 또는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
남들 보기에 좋은 사람을 선택하여 연애를 시작한 언니들에게는 한 마디 하고 싶어.
'그래서 지금 행복해?'


언니들은 사랑이 쉬워? 난 항상 어렵던데. 어쩜 그리들 사랑한다고 잘도 말하고, 말하라고 요구하는지. 신기해. 타인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애정을 과시하는, 쉴새없이 사랑을 확인하려 드는, 비밀번호 공유가 사랑의 증거라도 되는 양 믿는 언니들을 볼 때마다, 저러다 나중에 헤어지면 그때는 어쩌려고 저러나, 저렇게 서로를 못 믿으면서 어떻게 사귀지, 하는 의문이 드는 건 나뿐일까?

내 상식으로 정말 이해 안되는 것이 또 하나 있다면, 스킨십 문제.
개인적으로는 플라토닉도 취향이지만, 대세는 에로스니까.
마음이 그다지 가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 손을 잡고, 껴안고, 키스하고, 섹스까지 해?
원나잇하는 언니들은 최소한 자신의 '필'에 솔직하기라도 하지. 언니들은 어쩜 그래?
몸이 그렇게 쉽게 열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존경스러워서.
나는 그렇게 못하거든. 환상을 갖고 있기보다는 마음이 없으면 몸이 거부해.
(마음이 동하면? 여러 의미로 사춘기 소년같아. 알아서 생각해.)
그러다 헤어지면, 둘만의 비밀스러운 사진과 영상이 P2P 사이트에 공유되고,
언니들 얼굴과 몸매와 테크닉으로 점수 매겨지는 건 알고 있어? (어째서 이런 걸 아는지는... 비밀. 히히.)

왜 그렇게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해? 사랑하고 연애할 사람이 없으면 때가 되어 나타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리면 안 되는 거야?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야 알겠는데, 게임 경험치 쌓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한다는 이유로, 사람만 바꿔가며 영양가 없는 똑같은 짓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느니, 조금 더 기다렸다가 온몸을 흔드는 한두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하는 게 언니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좋지 않을까?


*


언니들에게 주절주절 떠드는 나? 나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고, 연애는 꼭 해야 하나 싶고, 사랑은 하면 좋은, 그러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그저 같이 살고 싶은, 이 연애공화국의 솔로레타리아, 그 중에서도 제일 대접 못받는 부류인 친구형 인간(친구하긴 좋고, 그 이상은 좀...)이야. 그래서 불행할 것 같아? 아니, 지금 이 순간, 행복해.

나에게 사랑은 말 그대로 accident야. 예측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자각할 시점에는 언제나, 이미 후진이 불가능한 상태였어. 그 불가항력 앞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 그저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최대한 노력하거나, 아니면 음속으로 달려 재빨리 그 시간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수 밖에.

나는 항상 내가 먼저 인연의 그물을 쳤어.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치는 법은 없으니, 어장관리는 아니야.) 먼저 말을 걸고, 계기를 만들어 자주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조금 친해져 있어. 보통은 거기까지. 나름대로 규칙은 있지. 한 번에 한 사람씩만, 대신 '그 사람만 영원히'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 것. 내가 먼저 인연의 그물을 엮고, '나는 너와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두세 번도 아니고) 단 한번만 말해주면, 나는 그 그물을 거둬들였어. 몇달 정도는 견디기 힘들지. 나도 상처받으면, 아픈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그 기간이 지나 그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는 확신이 생기면 뒤도 돌아보지 않았어. '쿨'해서? 노. 나는 오히려 활활 타오르는 '핫'한 인간인데?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푹 빠져서 감정을 소진했고, 완전 연소했기 때문이야.

21살 때 '봄날은 간다'를 봤을 때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말에 공감했는데, 이제는 공감이 안 되더라. 전혀. 내가 변한 것도 있겠지만, 원래 세상 이치가 그런 것 같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어, 안 그래?


*


"그녀와 나는 음악과 정치, 예술, 모든 분야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거기다 섹스까지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어디 있단 말인가."
- 존 레넌


캬, 역시 뭘 좀 아시는 오라버니. 요코 언니가 그런 멋쟁이였나? 몰랐네.

나 역시 글이든, 말이든 전할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 할 말을 제대로 할 줄 알고, 남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좋아. 그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 시간을 몇 시간쯤 내어 줄 각오가 항상 되어 있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함께 나눌 이야기가 없는 사람을 좋아할 수 있어? 나는 아닌데. 여기에 목소리 듣기 좋고, 노래까지 잘한다면 어익후, 쌩유 베리 감사지.

그리고 뭔가를 배우려는 사람이 섹시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건 내가 공부 오덕이라 그런 것 같고. 히히.


말이 좀 이상하기는 한데 나는 사람에 관심이 적은 편이야. 게다가 둔해서 '말하지 않으면 몰라.'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확인하려 하거나 증명하려 하거나 하는 취미는 없어. 호기심은 적지 않지만, 내가 모르는 타인의 과거에 질투하지도, 굳이 알려고 들지도 않아. 알아봐야 내 마음만 상하지 않겠어?

생각이 많기는 해도, 그건 온전히 내향적인, 나를 향한 생각이지, 다른 사람에 대해 그리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 그럼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그 사람이 보여주는 만큼만 보고, 듣고, 느끼고, 믿고, 판단하게 된다, 신기하지? 그럼 나는 머리 굴리고 계산할 필요없이 내가 느끼는 만큼 보여주고 들려주면 되지. 참 쉽지?

사르트르가 '타인이 지옥'이라고 그랬다는데 '내 마음이 더 지옥'인 것 같아, 살아보니까.

언니들이 혼자서도 완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자고. 그래야 나는 나, 너는 너, 이런 마음으로 서로 다른 존재를 진심으로 받아들일테니까. 나도 잘 모르니까 남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믿기 어렵고, 확인하려 들고 그런 게 아니겠어? 언니들 자신을 많이 관찰하고, 사랑해 줘.

아무래도 나 홀로 지내는 법을 잘 모른다고, 거기에 익숙하지 않다고 다른 사람을 찾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19금 영화 제목 때문에 야하게 느껴지는 'Basic Instinct 원초적 본능'에 충실한 언니들이 되었으면 해. 본능이 걷잡을 수 없이 다시 폭발할 때까지 사랑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자신을 돌보면서, 일상을 꾸려가자고. 설마 나처럼 몇년씩, 서른 다 될 때까지 잠자고 있겠어? 뭐 그러다 서른 넘으면 또 어때서? 그치?


마지막으로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 스님이 법문하시면서 소개한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라는 책에 나온 행복의 비결을 나누어 줄게. 지금까지 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웠어. 그럼, '지금 이 순간' 현명하게, 행복하게 잘 살아, 언니들.

행복의 비결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내가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달리하는 것,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 마지막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生死一如.

2009.5.28 경주 불국사 극락전 (누르면 커지는 사진!)늦은 5월의 불국사는, 특히 극락전 앞은 수학여행을 온 철없는 초등학생들과 가이드를 따라 다니는 일본인 관광객들, 옷차림부터 다른, 분향소를 찾아 온 조문객이 뒤섞인, 난장판이었다. 안쪽은 숨소리조차 거슬릴 정도로 죽음처럼 깊은 침묵이 흐르고, 바깥쪽은 우리네 삶처럼 쓸데없는 말과 행동이 넘쳐... » 내용보기

Too proud to live.

낮 12시 즈음,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가 받은 전화 한통, 담담한 어투로 전해주는 소식을 듣자마자 잠이 확 달아났다.'pride' 그 자체인 사람이구나, 라고 했더니 소식을 전해준 친구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했다.  수많은 생각이 스친다. 여기에 조금만 기록해둔다.언제나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 »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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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노래 한번 망쳐봤다.오랜만에 소리 내어보니 참 오래 쉬었다 싶더라.음정이 괜찮다 싶으면 발음이 마음에 안 들고,발음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음정이 엉망이라 부르고 지우고를 6번 반복한 끝에 얻은 버전.(사실 이것도 별로 마음에 안 든다만 더 이상은...)   가사 내용... (사심이 100% 들어... »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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